그리스도가 지금 이땅에 오시면 ...
Free Board 2009/01/29 11:53그리스도가 지금 이땅에 오시면 난 그를 주로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 이곳에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남루한 차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30대 청년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난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세상에 떠도는 종말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허구인지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알량한 기득권 때문에 그를 전기의자에 앉히거나, 목을 매달거나 주사기로 약물을 집어넣지는 않을까?
우리는 2천년전 그를 핍박하고 못박았던 저들과 과연 다른가?
'바리새'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perushim)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처럼 바리새인은 율법을 중시하여 표면적으로는 완전하리만치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다.
구약에 언급된 수많은 율법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켜행했던 수많은 율법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고, 완성된 율법, 새로운 계명을 주신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한다는 이 말은 율법을 조항을 다듬는 완성이 아니라 퇴색된 율법의 의미를 바로 잡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인간의 죄성과 오만함은 율법을 지켜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러한 율법들은 우리가 다 행위로 지켜내지 못한 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무릇 구원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었을때 그 율법은 그리스도가 주신 하나님과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성결해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이웃과의 원만하고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간의 무지와 오만함은 그 계명들을 단지 지키기 위한 계명으로 만들어 버렸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의 수단으로 만들었으며, 그 계명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잊어버렸다.
어쩌면 바리새인들도 그 시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기억하기 힘들기에 스스로들이 규칙을 정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기억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높이는 것을 막기위해서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충실하고자 했고 말씀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섬기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을 사는 나는 다른가? 우리가 세운 원칙들이 누군가를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마땅히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며, 이야기 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나는, 무지를 핑계삼는 가증스러운 나는,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다는 그들과 다른가?
그들과 다를바 없는 내가..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