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마18:15-22 )

Quiet Time 2008/03/26 08:37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1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복음을 듣고 믿는 것 까진 그렇다 치지만 그 믿음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 그 믿음은 무엇일까? 믿는 척하는 건 아닐까?

본문은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본문은 형제의 잘못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는 치리가 아닌 용서라고 한다. 용서는 구하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잘못을 덮어두고 없었던 일인냥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함에 대한 인식을 하게 하고 용서를 구하게 하며, 공동체는 다시 그를 품어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무엇이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때 그릇된 것인지를 분별하는 것과 그 사실을 그에게 전함에 있어 우리가 기도하고 함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은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지혜가 필요함은 잘못을 한 사람이 죄에서 도망하치게 하고 공동체와 격리하고 구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허물을 벗기고 씻겨 다시금 공동체로 품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럴수 없음을 안다. 우리가 그를 위해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다시금 형제로 품기 위한 마음으로 권면한다면 그는 필히 다시금 공동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혹여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공동체에서 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의 진실함과 마음의 순전함을 의심해야 할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부족함을 아심 때문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용서할 것을 말씀하시는 듯 하다.

비판과 책망은 단순히 누군가의 허물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용서와 관용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서로를 돌봄에 대한 귀찮음이 공동체를 의미없게 만들어 가겠지만, 어쩌면 사랑없는 비판, 책임지지 않을 책망은  공동체를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2008/03/26 08:37 2008/03/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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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토스 2008/04/11 18:29 Modify/Delete Reply

    아멘!
    근데 참.....갈길이 머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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